뉴스노믹스 전상천 기자 |
"1950년 9월, 무더운 여름밤이었습니다.
부모와 형, 삼촌 등이 산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은 밤이 오자 숨을 헐떡이며 집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리곤 동이 트기 무섭게 다시 깊은 산 속으로 달아나기를 반복했습니다.”
정금모(김포지역 민간인 학살사건 유족회 대표)
아버지가 총에 맞아 숨지고 한 달 뒤 태어난 정금모 회장은 주변의 전언으로 기억하고 있는 당시 상황들을 직접 겪은 것처럼 생생하다고 전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국군이 다시 일부 영토를 되찾으면서, 김포지역 양민들은 오히려 더 큰 비극을 맞이해야 했습다.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경찰서 유치장이나 방공호에 갇혔고, 자백을 요구하는 고문에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민들은 마을 곳곳 언덕으로 줄지어 끌려갔고, 산 속에서는 요란하게 총성이 울렸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 사건은 지난 1950년 9월~10월 인민군에 부역했다는 혐의 등으로 경찰 또는 치안대에 끌려간 민간인들이 김포군 하성지서, 양곡지서, 쌀창고 등에 감금돼 고문을 받다 인근 산지에서 집단으로 학살당한 사건이다.
당시 유족들이 추산한 희생자 규모는 2천여 명에 달한다.

민통선평화교회 인권센터와 시민의힘, 더나은김포, 김포정치개혁시민연대 등으로 결성된 한국전쟁당시김포지역민간인학살진상규명위원회는 "한국전쟁 당시 김포지역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에 함께해 달라"고 피력했다.
김포지역역민간인학살진상규명위는 최근 한국전쟁(1950~1953) 당시 경기 서북부 지역(현재의 김포·파주·고양·연천 일대)에서는 후퇴·점령·재점령 과정 속에서 다수의 민간인 학살사건이 발생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에서 확인된 주요 장소들을 보면 김포 지역은 문수산 고무래골, 하성면 태산, 파주 지역은 적성면·파평면 일대, 고양 지역은 벽제·관산·대자동 일대, 연천 지역은 신서면·중면 일대다.
경기 서북부 지역의 공통적 특징은 ① “예비검속” → 전쟁 발발 직후 좌익·의심 인물 선제 구금 후 처형, ② “부역 혐의” → 점령기 이후 협력자로 간주된 주민 처형 ③ 계곡·하천·야산 등 은폐 용이 지역에서 집단 매장 ④ 유해 발굴이 아직도 진행 중인 곳 다수에 이른다.

김포지역 민간인 학살 가해 주체는 김포경찰의 지휘를 받던 치안대로 파악됐다.
치안대는 여우재 고개, 문수산 고무래골, 하성면 태산 골짜기 등지에서 다수 민간인을 학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식 경찰이 아닌 일반인으로 구성된 우익단체인 치안대가 공권력의 지시 또는 비호 아래 학살을 자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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