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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대진의 영화이야기]입에서 입으로, 어느덧 영화에 이르기까지

 

 

서른 줄에 이르러서도 봐야할 것들은 많고 알아야 할 것들이 수두룩하다.

 

이 같은 참 된 사실은 자신을 깨우쳐 타이르게도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흘려듣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다.

 

이상적인 관계를 꿈꾸어 왔음에도 아이를 대하는 것도 뜻대로 되지 않고, 사람과의 관계는 점점 서먹해지기만 할 뿐. 그런 현재를 보고 있노라면 나의 인생은 무엇이었는지 문뜩 돌아보게 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식욕이며 문학의 계절이라 불리는 이 시기에 글쓴이는 이처럼 미숙하고도 안타까운 감정에 물든다. 나이에 비해 철이 없단 생각으로 주눅들 때면 머리에 스친 낙엽조차 멀게 느낀다. 하지만 가을바람이 높게 분다 하여도 결코 손에 닿지 않는 것은 아닐 거라, 그런 믿음을 갖고자 이처럼 골똘해지기 쉬운 어느 날을 한 영화로 달래보고자 한다.

 

예루살렘 왕국의 번영이 백여 년을 이루고, 성지를 차지하기위한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대립이 끊이지 않던 시대.

 

죽은 이의 목을 에는 겨울바람을 헤치며 예루살렘의 통치자 고드프리(리암 니슨)는 돌연 그의 형제가 다스리는 프랑스 외지에 찾아온다.

 

한 편, 아내의 자살 후 실의에 빠져있던 대장장이 발리앙(올랜도 블룸)은 호시탐탐 재산을 노리던 이부동생의 억지누명에 의해 구금돼있다 풀려나고. 아내에 대한 미련과 애환을 덜고자 그녀의 흔적이 남은 물건을 태워 대장간의 불을 지핀다.

 

형제일가의 주제넘은 야욕과 예루살렘의 앞날을 걱정하면서도 의미 깊은 땅에서의 추억에 잠긴 고드프리는 고심한 끝에 발리앙의 대장간을 찾는다.

 

일의 의뢰라는 구실로 발리앙에게 서먹한 말문을 튼 그는 오래 전 발리앙의 어머니와 불륜을 범하였고, 발리앙이 자신의 사생아라는 사실을 밝히며 후계자로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원정에 동참하길 권하지만. 발리앙은 이를 거절한다.

 

그날 밤. 이부동생은 십자군을 따라 떠나지 않은 발리앙을 설득해보지만 뜻을 꺾지 않자 형수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내 심기를 건드린다.

 

그를 돌아본 발리앙은 문뜩 목에 걸린 십자가목걸이를 발견하고, 죽은 아내의 물건을 훔쳤단 사실에 분을 삭이지 못한 발리앙은 그를 살해하고 만다.

 

그렇게 고통에 몸부림쳐 죽어가는 이부동생을 지켜보던 중 되찾은 아내의 목걸이를 살핀 그는 자살한 죄인이라는 아내의 오명으로 씻기 위해 고드프리를 뒤쫓아 성지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에 오른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05년작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은 3차 십자군 원정의 계기가 되는 1187년 하틴의 뿔 전투, 그 중 예루살렘 방어전을 지휘한 이벨린의 발리앙(발리앙 디블랭)의 이야길 다룬다. 민담이나 전설과도 같은 서사방식이 특징이며 직관적인 내용의 스토리로 이루어져있고, 그러므로 잔잔한 서장파트에 한해선 현대영화에 익숙한 이들에게 무료함을 느끼게도 할 거이다.

 

하지만 주인공 발리앙이 자신의 태생을 알게 되면서부터 그 감정을 대면하듯 몰아치기 시작한 사건들을 따라 잔잔한 미쟝센에 익숙해져갈 쯤, 어느덧 이야기의 탁류에 몸을 내맡기는 자신을 볼 수 있다.

 

더불어 등장인물들을 뜯어보기 좋은 영화로, 주인공 발리앙은 타인을 위해 헌신할 줄 아는 기사의 모범이자 뜻을 굽히지 않는 신념 있는 인물로 잘 나타나며 보두앵 4세는 지병을 앓고 있음에도 이성적으로 위기를 타파하는 현명한 왕, 술탄 살라흐 앗 딘은 카리스마와 대비되는 인간미를 더해 지도자의 품격을 더하였다.

 

이 외에도 화려한 모습 속에 고뇌를 품은 시빌라 공주, 살인을 즐기면서도 신앙으로 합리화하는 삐뚤어진 르노 드 샤티옹 등 다양한 인물의 내러티브가 높은 완성도로 작품에 반영되었고. 무엇보다 대사만큼이나 보이는 것으로 의도를 전하고자 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서정적인 디테일이 인물의 개성을 끌어올려준다.

 

이처럼 다양한 볼거리로 가득한 본 영화는 복합적으로 얽힌 주제를 통하여 인간과 신앙, 신에 의한 종교의 이상점과 현실을 잘 보여준다.

 

그 주제에 정답이 없는 만큼 생각을 정리해가며 홀로 곱씹어 보기 좋고, 저마다 다른 감상평을 논할 경우가 많기에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함께 의견을 나눠가며 이야기꽃을 피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여담으로 킹덤 오브 헤븐은 극장판과 감독판 두 버전이 있으며 극장판은 주요 맥락들이 잘려나간 탓에 어색하고 중간중간 붕 뜬 느낌이 들기에, 해당 영화를 처음 접할 경우 감독판을 보길 추천한다.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왔다.

 

그것이 그림이나 음악 같은 부연소재를 통해 구체화되었고, 시대가 변해 영화라는 방식으로 보이기에 이르렀다.

 

변해가는 세상 속에 변하지 않고 우리가 이야기를 찾는 것처럼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이들은 새롭고 색다른 개성을 추구하여 변해간다.

 

하지만 간혹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선정적이기만 할 뿐, 정작 이야기의 본질이 옅어져가고 있다고.

 

세상의 변화를 조급하게 쫓으려 한다고...

 

SNS의 발달과 지구촌화가 가속하며 대중의 의견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창작은 개인이 대중에 보이기 위한 것이지만 자신이 재미있다 여긴 걸 공유하고자 한 바람이기도 하며, 그렇기에 이 시대의 변화에 평행선을 맞출 필욘 없다.

 

조급하게 쫓을 필요 없다. 모든 이의 보폭이 완벽히 같을 순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 사람은 개성적이다.

 

그런 생각을 품은 글쓴이에게 있어 이 영화는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성지 예루살렘의 존재의미를 묻는 발리앙에게 살라흐 앗 딘이)

아무 것도 아니야... 모든 것이기도 하고!(Nothing... Everything!)

 

부디 이 영화를 접한 모두의 삶이 그 같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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