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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대진의 영화 이야기] 마귀의 날

엑소시스트: 더 바티칸

 

 

 

무더위가 가시고, 선선한 바람이 피부를 긁는 오싹한 시기가 찾아왔다.

 

핼러윈까지 남은 기간은 고작 한 달하고도 십 수 일, 축제가 다가온다는 건 무릇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지금처럼 그 기대감이 무겁고 죄스럽게 느껴지는 날은 없을 것이다.

 

지나간 시간일지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은 잘못이라 불리고 책임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잘못은 시인돼 묻히고, 책임은 부정하게 물든다. 그럴수록 내가 떠올리게 되는 건 특별할 것 없는 어느 이들의 한낱 웃는 얼굴이었다.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함께 웃는 얼굴. 이제는 사라져버린 이들이 지금까지 마땅히 누렸어야했을 당연한 일상 말이다.

 

이태원 참사로부터 329일이 지났다. 159명의 사망자가 나고, 유족들의 곁엔 소중한 이와 함께였어야 할 빈 시간만이 허망하게 흘렀다. 책임져야 할 자들은 주사를 든 의사 앞의 아이처럼 피하기만 하고, 그 부모란 이는 타이르는 자를 나무라고 의사를 질타하였으며. 그렇게 예방 없이 지나간 시간은 점차 병으로 번져 유족들의 가슴을 곯아터지게 하는 화근이 되었다.

 

그런 생각으로 밤을 샌다. 잊어선 안 되는, 우리가 바로 잡아야 할 것들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자들을 대신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러자면 영화에 대해 논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겠지만, 단지 바랄 뿐이다. 마음의 시름을 앓고 있는 이들이 단 1초라도 그를 잊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기를.

 

바티칸의 수석 구마사인 ‘가브리엘 아모르트 신부(러셀 크로우역)’는 이태리 트로페아에 있는 한 마귀 들린 사내를 진단한다. 스스로를 사탄이라 칭한 사내가 자신이 무엇이든 되고 어느 사람에게든 들어갈 수 있다고 하자, 신부는 자신이 준비한 돼지에도 들어갈 수 있느냐며 그를 부추긴다.

 

사내는 몰입하고, 돼지는 울부짖는다. 잠시 뒤 실이 끊긴 것처럼 사내가 쓰러지자 가브리엘신부의 지시 하에 돼지의 후두부에 총이 쏘아지며 한 차례 구마의식이 끝을 맺는다.

 

두 자녀 ‘에이미’와 ‘헨리’와 함께 죽은 남편의 유산인 스페인의 어느 폐성당으로 향한 ‘줄리아(알렉스 에소역)’는 시찰을 온 토마스 에스퀴엘 신부(다니엘 조바토역)와 복원작업에 한창인 건축가들을 만나 시공현황에 대해 논의한다.

 

그녀가 일에 집중한 동안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헨리는 성당지하를 탐험 중, 금이 간 벽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보게 된다. 그 뒤로 몸 상태가 나빠져 앓아눕고 점차 형언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하는데, 기괴한 목소리로 모욕하며 불길한 현상들을 일으키는 헨리의 모습을 본 가족들은 걱정과 두려움에 토마스 신부를 찾지만, 헨리가 그를 쫓아낸다.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해 시급히 바티칸에 이를 보고하는 토마스 신부. 해당 안건을 전해듣고 가브리엘 신부를 호출한 교황은 가장 신임하고 있는 구마사인 그를 줄리아가족이 있는 스페인으로 파견한다......

 

‘엑소시스트 : 더 바티칸(2023)’은 바티칸의 수석 구마사제였던 가브리엘 아모르트 신부의 이야길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엑소시즘 장르의 구색을 평이하게 갖추어 공포영화의 클리셰를 총망라한 종합선물상자처럼 보였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과자나 사탕이 아닌 바느질도구가 들어있는 것처럼 실망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영화였다.

 

실존인물을 다룬 이야기임에도 현실적이거나 새롭지 않은 서사. 왕도에 기인해있는 줄거릴 바탕으로 뻔히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 플롯에 더해 호러 장르임에도 비교적 밝은 분위기가 돋보여 관객들을 놀라게 할 기믹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공포성이 결여된 모습을 보인다. 그러므로 러셀 크로우라는 스타의 이름이 전부인 고착화된 작품이란 것이 이 영화에 대한 나의 주관적인 견해이다.

 

그렇다고해서 마냥 혹평할 것만은 아니다. 직관적인 내용은 난해함이 없고 엑소시즘 장르를 잘 답습하기에 후반부의 연출은 감회가 새롭다. 그리고 배경무드의 기복이 심하지 않아 눈이 피로하지 않다는 점 또한 장점이라 할 수 있어, 어두운 분위기나 호러 영화에 저항감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참에 시도해보시길.

 

어릴 적부터 누누이 들어온 말이다. 사람은 모두 평등하고 존귀하다. 베풀 것이 있다면 나눠야하고 도움을 바라는 사람에겐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고.

 

그것은 모두 옳다. 그럴 텐데, 옳지 못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목소릴 드높인다. 그들이 손지검하는 건 보호해야할 이들이며 그들이 옹호하는 건 사탕을 주는 자다. 그런 사실에 혼란을 느끼며, 나는 기다린다.

 

핼러윈 날. 되살아난 죽은 이들을 밟고 선 그들 입에 오를 것이 과연 사람의 호소인지, 악마의 조롱인지.....

 

 

 

 

 

뉴스노믹스 정대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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