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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그날'의 진실 규명에 함께해 주세요!…76년전, 한국전쟁 당시 김포지역 민간인 학살

당시 추산된 희생자 규모만 2천여명 육박

뉴스노믹스 전상천 기자 | "1950년 9월, 무더운 여름밤이었습니다. 부모와 형, 삼촌 등이 산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은 밤이 오자 숨을 헐떡이며 집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리곤 동이 트기 무섭게 다시 깊은 산 속으로 달아나기를 반복했습니다.” 정금모(김포지역 민간인 학살사건 유족회 대표) 아버지가 총에 맞아 숨지고 한 달 뒤 태어난 정금모 회장은 주변의 전언으로 기억하고 있는 당시 상황들을 직접 겪은 것처럼 생생하다고 전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국군이 다시 일부 영토를 되찾으면서, 김포지역 양민들은 오히려 더 큰 비극을 맞이해야 했습다.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경찰서 유치장이나 방공호에 갇혔고, 자백을 요구하는 고문에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민들은 마을 곳곳 언덕으로 줄지어 끌려갔고, 산 속에서는 요란하게 총성이 울렸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 사건은 지난 1950년 9월~10월 인민군에 부역했다는 혐의 등으로 경찰 또는 치안대에 끌려간 민간인들이 김포군 하성지서, 양곡지서, 쌀창고 등에 감금돼 고문을 받다 인근 산지에서 집단으로 학살당한 사건이다. 당시 유족들이 추산한 희생자 규모는 2천여 명에 달한다. 민통선평화교회 인권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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