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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냉전 해체 주역'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91세 일기로 별세

민주화·냉전해체 업적 vs 소련해체 '배신자' 평가 엇갈려

뉴스노믹스 권경희 기자 |

 

옛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마지막 지도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사망했다고 러시아 국영 언론이 러시아 중앙 임상병원을 인용해 보도했다. 향년 91세.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중앙 임상병원은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오랜 투병 끝에 이날 저녁 사망했다"고 밝혔다.

 

냉전 종식과 관련된 마지막 생존 세계 지도자의 죽음에 대한 전 세계의 반응은 복잡하다. 고르바초프는 수십 년간 소비에트 권위주의를 멈추고 분열된 유럽을 평화롭게 재통일하게 한 것에 대해 국제적 찬사를 받았지만 1991년 소련 붕괴를 관장했던 것에 대한 평은 국가별로 크게 갈린다.

 

고르바초프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사람들 중에는 소련의 붕괴를 "세기의 가장 큰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불렀던 크렘린의 현재 거주자인 블라디미르 푸틴이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죽음에 대해 인테르팍스 뉴스에 "깊은 애도"를 표했다고 크렘린궁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를 통해 짧은 성명을 발표했을 뿐이다. 푸틴은 고르바초프의 역사적 역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며, 페스코프는 대통령이 31일 오전 고 소련 총리의 친척들에게 전보를 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30일 밤 러시아 국영 언론의 반응은 똑같이 조용했다. 반면 서방 지도자들은 달랐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냉전을 평화적으로 끝내는 데 그가 보여준 용기와 성실함에 항상 감탄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인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은 “그는 냉전을 끝내고 철의 장막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자유로운 유럽을 위한 길을 연 유산에 대해 우리가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미국 국무장관이자 소련 학자였던 콘돌리자 라이스는 “그는 국민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제공하려고 노력한 사람이었다. 그와 그의 용기가 없었다면 냉전을 평화롭게 끝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의 삶은 큰 결과”라고 부연했다.

 

고르바초프 자신은 사망하기 전에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전쟁이 시작된 직후 러시아 당국이 폐쇄한 자유주의적 모스크바 라디오 방송국의 오랜 편집자인 알렉세이 베네딕토프는 푸틴의 공격과 권위주의로의 전환에 대해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가 한 모든 것이 파괴됐다. 고르바초프의 모든 개혁은 먼지와 연기가 돼 0으로 줄어들었다”고 포브스 러시아판을 통해 비판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미 국무부에서 러시아 정책을 감독했던 다니엘 프리드(Daniel Fried)는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불가능한 일, 즉 소련을 개혁하려고 했다. 비록 실패했지만 조국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서 집권한 이래 전제주의적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이듬해 동서독 통일을 사실상 용인해 서방에서 냉전 해체의 주역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1989년 민주화 시위가 동유럽 공산주의권 국가를 휩쓸 때 과거 이들 국가에 대한 무력 개입을 정당화한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폐기한 것이다.


특히 그해 12월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몰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 동안 계속된 냉전의 종식을 공식 선언했다. 그는 이 같은 공로로 이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이처럼 '냉전체제를 종식하고 동구권의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평가와 함께 소련의 해체를 초래한 장본인으로 동구권을 서방에 넘겨준 '배신자'라는 혹평도 받는다.

 

준비되지 않은 급진적 개혁이 결과적으로 경제적 혼란과 소련의 해체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냉전 말기 경제 침체에 체르노빌 사태까지 겹친 상황에서 섣불리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물가 급등과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벌어졌다.

 

1989년에는 소련의 초대 대통령이 되지만 1991년 8월 보수파의 쿠데타 이후 급격히 권력 기반을 잃었고 소련도 공식 해체됐다.

 

이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그는 이후 다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으나 득표율은 미미했고, 최근에는 모스크바 외곽의 전원주택인 다차(dacha)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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