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노믹스 최대억 기자 |
지난 28년간 피의사실 공표죄로 접수됐으나, 기소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인 기동민 의원(서울 성북을)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995년부터 올해 8월까지 피의사실 공표죄로 접수된 건은 총 811건이었는데, 올해 8월 기준 접수 건은 85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갱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처분을 받은 722건 중 533건은 불기소, 198건은 기소중지 및 참고인 중지 등이었고, 기소는 단 한 건도 없었다.
1995년은 피의사실 공표죄 관련해서 현재 검찰을 통해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해다.
이러한 처분 내용은 사회적 논란을 초래하고, 언론의 중심을 장식했던 피의사실 공표 의혹이 기소조차 없이 흐지부지 처리되었음을 보여준다.
기소가 없으니 재판도 없고, 처벌도 없었다. 피의사실 공표죄가 규범적 실효성을 상실하고, 사문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형법' 제126조(피의사실 공표)에 따르면 검찰, 경찰 그 밖에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제기 전에 공표(公表)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다.
피의사실 공표죄의 목적은 무죄추정의 원칙따라 피의자의 인격권 명예를 지키고, 공정한 재판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호하며 국가의 수사권을 적정하게 행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마녀 사냥식 여론재판이 먼저 진행되거나, 판사나 배심원들이 편견을 가진 채 재판에 임할 수 있다.
2019년 11월, 문재인 정부는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위 ‘티타임’을 폐지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지난 7월에 '형사사건의 공보에 관한 규정'을 다시 개정하고, 언론 대상 비공개 정례브리핑인 ‘티타임’을 부활했다.
폐지 3년 만에 재개된 것이다.
지난 30일 검찰이 성남FC 관련하여 두산건설 전 대표 등을 불구속기소하면서, 공소장에 이재명 대표와 정진상 정책실장이 공모했다는 내용을 담겼다는 보도가 있었다.
법무부가 ‘공소장 국회 제출 시기 개선’ 개정 내부지침을 마련, 국회의 자료요구에 따라 공소장을 제출할 수 있도록 허용한 7일도 지나기 전이었다.
명백한 피의사실 공표 행위다.
여론을 호도하고 당사자를 망신주는 전형적인 ‘수사내용 흘리기’ 수법인 것이다.
티타임 부활과의 연관성을 직접 확인할 수 없으나, 정치 수사, 보복 수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되면서 피의사실까지 언론에 유출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수사기관뿐만 아니라 변호인들까지 상대방에 대한 피의사실 공표에 나서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여당 전 대표의 여러 의혹과 관련하여 ‘경찰에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을 것’, ‘경찰 출석을 거부하는 소문이 들린다’ 등 관계자가 아닌 이상 알기 어려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다.
피의사실 공표 행위를 근절하고자 했던 문재인 정부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기동민 의원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하는 피의사실 공표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접수 건수가 해마다 늘고 있고, 올해는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단 한 차례도 기소되지 않은 것은 결국, 수사기관의 제 식구 감싸기가 낳은 폐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 의원은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둘러싼 상충하는 법익 간 균형을 맞추는 것이 쉬운 문제는 아니다”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차제에 검사가 관련된 사건에 대해서 공수처가, 반대로 공수처 검사가 관련된 사건은 검찰이 피의사실 공표죄에 대한 기소권한을 나누도록 하는 등 제 식구 감싸기를 근절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