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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탐사기획


[사평]"팔은 안으로 굽지만 양 손목은 안팎으로 움직인다"

[최대억/유라시아탐사본부 본부장]

뉴스노믹스 최대억 기자 |

 

한국은 중국과 자매교류 맺을때 첫발을 잘못 내딛은 감이 든다.

 

한국은 땅이 작으나 작다고 중국의 작은 지자체와 동급으로 연결고리 맺는건 내키지 않는다.

 

대구광역시가 중국의 연태시 등 일개 기초단체와 머리를 나란히 하다보니 그들은 이젠 익숙한듯 성장급은 꿈쩍도 않는다. 

 

대구 뿐 아니라 광주, 부산, 인천, 서울, 경기 등 전국 팔도·시가 마찬가지다.

 

2013년 광저우일보미디어그룹 14번째 계열사의 편집국장 근무시절 내가 근무한  한국의 대구일보 사장 등 한국 손님들을 초대했다.

 

당시 현지에서는 광저우일보미디어그룹 회장이 응대했다.

 

관료매체다보니 다들 공직자들이다.

 

그를 중국 관료에 비유하면 광저우시장 이상~광동성 성장급 사이 정도로 보면된다.

 

그보다 더 높은 광저우미디어그룹+페리호그룹+아이티그룹 등 그룹총괄 회장이 당초 응대키로 했으나 당시 인민대회와 맞물려 북경에서 못왔다.

 

사실상 비리 혐의로 상무위원들로부터 조사받고 있었다.

 

여하튼 나는 한국인으로서 의전관계에 있어 예민할수 밖에 없었다.

 

당시 대구일보 사장이 탄 승용차는 광저우일보그룹 회장차와 그 비서가 의전해라고 고집부려 그렇게 했다.

 

광저우일보 이사 출신인 A(탈북 출신)씨가 힘쓰준 사실이 있다. 팔은 안으로 굽더라. 

 

내가 가장 오래 머문 북경에선 현 중국 주석인 시진핑의 스승을 만난적있다.

 

시 주석이 개인항공기로 직접 서안에 가서 동행해 북경으로 오게한 90세(당시)를 바라보는 어른이다.

 

시진핑 아버지의 비서실장 출신이기도 하며 중국을 세운 태자당 소속 원로였다.

 

당시 양국창(전 중국 육군 장성ᆞ호 山风烈 ) CCTV방송국 서예협 회장과 염태평(전 공안국장ᆞ천안문 벽면 휘호 쓴 이) 공안국 서예협 회장 등과도 만나 차 이후엔 술한잔하며 놀았다.

 

이후에도 그들과의 관계는 변함없다.

 

그리고 한 고위관료 출신은 자식내외를 소개하며 그들을 잠깐 나가있어라한후 자신의 엄마가 한국인(조선인, 남쪽이라고 했다)었고 문화혁명거치며 성공할때까지 군인으로서 숨길수밖에없었다고 눈물을 보인적이 있다.

 

처음 소개받은 장소는 원자바오 전 총리 집무실이었고 두번째가 북경올림픽주경기장내 귀빈실, 세번째가 국방대학교(일반인 출입금지)다.

 

소개해준 이가 태자당 소속의 지인(한족)이고 그를 소개해준 지인이 조선족 상위 1순위있는 형과 나와 오랜 지인인 흑룡강 공안출신 조선족 동생이다.

 

세월지나도 그때나 지금이나 남은것은 변함없으려 노력하는 마음이다.

 

이래저래 인연돼 만난 한족들중엔 새벽에라도 보고 싶으면 문자를 남겨놓는 장군출신도 있다.

 

내가 아는 한족 관료출신들은 한국을 한번도 온적없다. 대구와 내 고향인 경북 청도를 보고 싶다고한다.

 

그들에게 늘 하는 얘기.

 

공평(公平)한 공유(共有).

 

그 공유가 깨지고 힘이 한쪽으로 기울면 안하는것보다 못하다.

 

좋았다가도 깨져 총칼들고 싸우다 반복되니, 중국 속담에 "큰일은 작게, 작은 일은 없도록 하는(大事化小, 小事化了) 대륙의 큰 마음을 배우고싶다고" 하면 그리들 좋아한다.

 

가끔 농삼아 그들이 "한반도가 작다"하면, 나도 웃으며 "땅에서 보면 그리보이나 하늘에서 내려다 지도 거꾸로보면 한반도가 중국의 머리에 있고 너희는 몸뚱이다(从天空下看或地图上看你们是身体韩半岛是头部)"고 하면 한바탕 웃는다.

 

중국은 인구와 면적이 넓은 많큼 가축과 곡식, 사계절 과일 등이 풍성하다.

 

게을러 죽어도 먹을것 없어 죽을리는 없다.

 

한국은 대대로 중국의 왕족들이 한맺혀 많이 찾았다한다.

 

근거가 있다고 들은 얘기중 진시왕이 죽기전 불로초 욕심에 서복(徐福), 또는 서불(徐巿)이라는 방사를 한반도 제주로 보냈다.

 

보낼때 부정타면 안된다며 불노초를 예쁜 여자와 잘생기고 힘좋은 무사들이 보호해야한다며 전국 각지의 인물들을 뽑아 보낸 후 자신은 죽었다.

 

죽을때 무덤에 데리고 간 신하가 있는 반면 살아서 배신(?)한것 처럼 보인 신하가 제주를 통해 한반도에 자손을 이어가며 살았다한다.

 

사실상 불노초가 없다는것을 진시왕은 알고 측근들을 보냈다는 얘기다. 서씨 성을 가진 서복의 후예가 한국에 많다.

 

반면 최치원 선생은 당나라 유학시절 양저우에 후손을 많이 배출했다.

 

당시 양저우 부시장은 한족이나 자신은 최치원의 후손임을 자랑스러워하며 매년 수백명을 이끌고 제사지내러 한국에 온다. 몇년전 한국에서 서운한 얘기 전해듣고 한동안 안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족 친한 형ᆞ동생들은 "한국과 북한이 잘 살고 힘이 있어야 우리도 잘산다"고 한다.

 

오늘도 주변에 지나가는 조선족이 있으면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주길 바란다.

 

타향살이 쉽지않다.

 

팔은 안으로 굽지만 양 손목은 안팎으로 움직인다. 

 

한국이 조선족을 한민족 일원으로 너그럽게 포용하며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관계를 강화해야하는지론에 고집을 세운다. 

 

조선족이 양국 관계의 우호 증진만 아니라 남북 통일에도 이바지할 수도 있고, 그 반대(적)가 될 수도 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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