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동윤의 영웅의 부활] 가짜뉴스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되는가
대한민국은 쇼 공화국이다. 정치 경제 사화 문화 등 연출을 통한 쇼가 개입하지 않는 분야는 없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대듯 지난 한 달 동안 대한민국을 삼류로 만들어버린 청담동 술자리 사건도 그렇다.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돈벌이와 몰락을 목적으로 하는 음모 쇼의 냄새가 난다. 나는 이 사건에서 영화 한 편을 떠올렸다. <왝 더 독 Wag the dog>이다. 1998년 9월 12일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같은 날 개봉했다. 번갈아 가면서 관람했다면 미국의 두 얼굴을 동시에 마주한 셈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추문을 연상시키는 <왝 더 독>은 가짜뉴스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왜 개가 꼬리를 흔들까? 그야 개가 꼬리보다 더 똑똑하니까. 꼬리가 더 똑똑하면 꼬리가 개를 흔들었을걸.”
<왝 더 독>은 제목의 뜻을 친절하게 가르쳐주면서 시작했다. 그런데 이해가 쉽지 않았다. 뜬금없이 개와 꼬리라니? 그래서 의역해보았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 즉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꼬리가 대중매체를 장악하게 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몸통으로 상징되는 국민이 꼬리가 원하는 대로 조종당하지 않을까?
이제 영화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대통령 선거를 12일 남겨두고 대통령이 백악관에 견학 온 학생을 성추행했다. 이 사건으로 재선에 빨간 불이 켜진 백악관은 비밀리에 정치해결사 브린을 불러들여 지하 밀실에서 대책을 강구 했다. 그는 어렵지 않게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것은 대중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큰 사건을 하나 터트리자는 것이었다. 그들 사이에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가지 않았을까?
“연애인 마약을 터뜨리면 어떨까?”
“뭐 마약? 그걸로 되겠어? 요즘 사람들은 그런 사건에 관심 없어”
“그럼?”
“그래도 미국 대통령 선거인데…, 당연히 세계적인 것으로 가야지.”
“세계적인 것이라면?”
“전쟁 아니겠어?”
“뭐, 전쟁?!”
“그래, 전쟁 쇼!”

브린은 전쟁을 전쟁영화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의 전쟁이라는 말에 백악관 참모들은 놀랐다. 그러나 달리 방법도 시간도 없었기에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고, 드디어 전쟁 쇼가 시작되었다. 브린의 지시에 따라 백악관 참모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전쟁의 대상국으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그래서 그 나라 편을 들 수도 없는 알바니아를 지목했다.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는 B-3 폭격기를 등장시켜 전쟁 분위기를 조성했다. 거기다가 사람들을 믿게 하려고 군 장성들이 보잉사 관계자를 만나도록 했다. 처음에는 주먹만 한 전쟁 쇼가 몇 번 구르더니 블록 버스트 급으로 커졌다. 그러자 오히려 백악관 참모들이 걱정했다. 금방 들통날 거라며…. 브린이 그들을 나무랐다.
“걸프전에 대해선 얼마나 알려졌지? 폭탄이 굴뚝으로 들어와 건물이 폭파되는 비디오, 그 건물은 모형일 수도 있어.”
되돌리기에는 늦었다. 참모들은 브린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백악관이 계속해서 B-3 폭격기나 특공대 등을 언론에 흘렸다. 이에 대중의 관심도 서서히 성 추문에서 알바니아 사태로 옮겨 갔다. 이제는 진짜 같은 전쟁 영상을 만들어 대중들을 속이는 일만 남았다. 브린은 할리우드 영화제작자를 찾아가 전쟁영화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성추문에서 대통령이 귀신이 아닌 이상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며 거절했다. 이에 브린은 걸프전의 사례를 들어 그를 설득했다.
“당신은 매일 뭘 보죠? 굴뚝 속으로 떨어지는 추적 미사일을 봤겠죠. 진실? 그 장면을 찍을 때 전 그 건물 안에 있었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거라고 해도 그걸 누가 알겠어요?”
듣고 보니 그랬다. 마침내 영화제작자가 흥분했다. 그는 영화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서 어렵지 않게 전쟁 쇼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이어서 배우를 캐스팅한 후에 촬영에 들어갔다.
세트장이었다. 카메라 앞에서 앳된 알바니아 소녀가 새끼고양이를 안고 달려갔다. 실은 그 소녀는 알바니아와는 상관없는 돈을 받고 출연한 배우였다. 한나절 이렇게 촬영된 영상이 CG 기술로 폐허가 된 마을과 합성되고 여기에 음향효과가 들어가면서 전쟁 쇼가 완성되었다.

과연 어떤 영상이 만들어졌을까? 배우가 세트장에서 새끼 고양이를 안고 뛰었을 뿐인데…,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영상이 공개됐다. 놀랍게도 알바니아 소녀가 비명과 총소리가 들리는 폐허가 된 마을에서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끔찍한 전쟁의 현장이었다. 이 영상은 곧바로 대중매체를 뜨겁게 달구었다. TV 뉴스 시간에 아나운서는 인류역사상 이보다 더한 만행의 현장은 없었다며 흥분했다. 이제는 누구도 대통령의 성추행사건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제작자의 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전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공항에서 소녀와 대통령을 상봉하게 했다. 그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대통령이 등장했다. 그때 알바니아 소녀는 추위에 떨고 있었다. 정이 많은 대통령은 소녀에게 다가가 자기 코트를 벗어 감싸줬다.
TV 앞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동했다. 그렇게 쇼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대통령의 재선은 떼어 놓은 당상이었다. 그런데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냄새를 맡은 CIA가 제동을 걸면서 다시 성추행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 위기일발의 상황에서도 영화제작자만은 눈도 깜짝 안 했다. 그는 자기만이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며 전쟁 쇼 2막을 준비했다. 내용은 이랬다.
알바니아 적진에는 아직 탈출하지 못하고 적에게 붙잡혀있는 303 부대원이 있었다. 그가 바로 버림받은 ‘낡은 구두’란 별명의 슈만 상사였다.
“와∼”하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기막히게 드라마틱했다. 이 시나리오에 맞춰 대통령은 담화를 발표했다. 조국을 위해 싸운 슈만 상사를 구출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예상했던 대로 영화제작자의 전쟁 쇼 2막은 대박을 터뜨렸다. 천만 관객의 영화처럼 여론이 호응하면서 대통령의 지지율은 89%까지 올라갔고, 전국적으로 ‘낡은 구두 열풍’이 일어났다. 이제 전쟁 쇼 2막은 피날레를 장식하는 빅 이벤트만 남겨놓았다. 그것은 전쟁영웅 수만 상사를 워싱턴으로 데려와 대통령이 직접 만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생겼다. 하필이면 슈만을 연기할 인물이 수녀를 강간한 죄로 옥살이를 하고 있던 정신이상자였다. 약이 없으면 통제가 안 되는 슈만을 보면서 이제 모든 게 끝났다고 한숨 쉬는 참모에게 영화제작자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 적에게 잡혔을 때 고문을 받아서 그렇게 된 거로 하면 되니까!”
영화제작자의 상상력은 무한대였다. 그런데 일은 계속 꼬였다. 슈만을 실은 비행기가 환영식이 열리는 앤드루 공군기지로 가는 도중에 슈만의 난동으로 추락해 버린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그들만은 살아남았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그들 일행이 잠깐 머문 가게에서 슈만이 여자를 강간하려다가 그 여자의 아버지가 쏜 총에 맞아 죽어버린 것이다. 갑자기 사라진 전쟁 쇼의 주인공! 그러나 이것 또한 영화제작자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시나리오의 내용을 수정했다. 죽어서 돌아온 전쟁영웅으로….
대통령이 성조기에 덮여 앤드루 공군기지에 도착한 슈만의 관을 맞이했다. 전쟁 쇼가 완벽하게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당연히 대통령은 압도적인 표 차로 재선되었다. 슈만은 국립묘지에 묻히고, 그 시간에 요원들에게 끌려간 영화제작자는 죽임을 당했다. 그날 뉴스에는 유명한 영화인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보도되었다. 이로써 전쟁 쇼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정치해결사 브린의 말처럼 우리는 폭탄이 굴뚝으로 들어가 건물이 폭파되는 CNN 뉴스를 보고 지금 중동에서 미국과 이라크가 전쟁 중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이 할리우드 세트장에서 촬영된 전쟁 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개봉된 지 24년이 지났다. 그때처럼 지금도 그랬다. 이 풍자 코미디를 보는 내내 우리의 등 뒤가 섬뜩해지는 이유는 광우병 사태부터 청담동 술자리 사건까지, 그리고 지금도 대한민국에서 그와 같은 쇼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송동윤 영화감독은
송동윤 감독은 그동안 시나리오를 만들고, 영화를 제작·연출하는 건 물론 대학에서 영화학도를 가르치고, 영화를 평론하고, 소설을 쓰는 등 전방위적으로 활동해 왔다. 현재 ‘무비웍스’에서 네플릭스에 선보일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송 감독은 <서울이 보이냐>, <바다 위의 피아노> <학교 반란> 등의 영화를 제작·연출했다. 또 ‘HID 북파공작원’(2000·시나리오), ‘우리 선생님’(2002·시나리오), ‘송동윤의 영화로 보는 세상’(2002·평론집), ‘흔들리면서 그래도 사랑한다’(2012·소설), ‘블랙아이돌스’(2014·소설), ‘5월 18일생’(2020·소설) 등을 썼다.
독일 보훔대학교 (Ruhr Universitaet Bochum) 연극영화 TV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한일장신대 연극영화과 교수 등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