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노믹스 오석환 기자 |
지난 9일 서울에서 차로 약4시간 원주에서 약2시간 거리 하늘아래 첫동네라 불리는 대한민국 석탄이 최초로 발견 된 곳, 국내 최대 광업소 '장성광업소'가 위치 했던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장성동 일대를 걷다.
태백 하면 가장 먼저 태백산, 함백산 등산으로 많이 알려져 있고, 바람의 언덕길과 운탄고도 1330길, 연화산 둘레길도 잘 조성이 되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태백 곳곳의 길들을 여럿차례 찾아와 걸어도 보았지만, 다시 찾은 태백시에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장성'이라는 동네를 소개 하고자 걸었다.
장성의 걷기 코스는 (옛)계산동에 위치한 태백초등학교에서 출발하여 (옛)화광동, 화신촌, (옛)협심동, (옛)호암동, (옛)문화동을 걸쳐 (옛)하장성에 있는 (옛)태백중학교까지 약4km를 걸었다.

태백시는,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산맥 중심부에 위치 해 있으며, 면적은 약303km²로 대한민국 전체 면적(100,339km²)의 약0.3%를 차지한다.
인구는 2024년 기준 약4만명이고, 행정 구역은 8개 동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고원 지역에 위치하여 광업과 태백산을 중심으로 한 고원 관광 도시로 성장하고 있는 도시다.
태백시는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 강릉부 삼척군으로, 1896년 강원도 삼척군으로 군명이 바뀌었으며, 1914년 군면 폐합 때 삼척군 상장면이 되었다.
지난 1920년대에 태백탄전의 탄층이 발견되면서 1936년 석탄공사 장성광업소 본체라 할 수 있는 삼척개발주식회사가 창업되고, 경제개발과 연탄의 수요증가와 더불어 한국 최대의 탄전지대로 성장하여 한국 석탄산업의 심장부가 되었다.
이에 따라 지난 1961년 상장면이 장성읍으로 승격되고, 1973년 장성읍 황지출장소가 황지읍으로 독립 승격되었다.
이후, 1981년 7월 1일 삼척군 장성읍과 황지읍을 합쳐 태백시로 승격하게 되었다.
당시 장성읍 일대는 장성1리, 장성2리, 장성3리는 장성동으로 신설 하였고, 장성읍 장성4리, 장성5리, 장성8리, 장성9리, 장성10리 일부는 화광동으로 신설 하였으며, 장성읍 장성6리, 장성7리, 장성10리 일부, 금천리는 계산동으로 신설되었다.
1997년 1월 1일 화광동은 장성2동으로, 계산동은 장성3동으로 개칭 되었으며 이후, 1998년 9월 10일 장성2동, 장성3동은 장성동으로 합동되었다.
지금의 장성동은 옛 계산동, 화광동, 협심동, 호암동, 문화동, 하장성 등이 모두 합동 된 것이다.
정부는 1980년대 중반부터 발생한 사회구조적 변화로 석탄 수요가 감소될 것이 예상되자 1986년 1월에 '석탄개발임시조치법', '석탄광업육성에 관한 임시조치법', '석탄수급조정에 관한 임시조치법' 3법을 통합하여 '석탄산업법' 을 제정, 후속 조치로 동력자원부 산하에 1986년 9월 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 설립 준비 사무국을 설치하면서 시작되었다.
태백시는 광산업이 한창이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인구 10만 명대에 달했고 1987년에 12만 명에 달하는 인구를 자랑했으나, 이후 '석탄산업화리화'로 탄광업이 몰락해 인구 유출이 급격히 진행되면서 전국의 모든 시 중 가장 인구가 적은 곳이 되었다.
태백시는 대한민국 군 지역 평균 인구인 5만 3천명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으로, 2022년 8월 12일 결국 인구 4만대까지 붕괴된 것으로 조사되면서 지역소멸 위기가 점점 가시화 되고 있는 지역이다.
1986년 석탄산업합리화 이전 당시, 태백의 거리를 찍은 영상들을 보면 차들도 많이 다니고 사람들도 바글바글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도로는 매우 한적하며 사람도 거의 안 보이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 매우 큰 차이가 난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자료에 따르면, 태백시 장성동 인구는 1981년 태백시 시승격 당시 16,982명 이었으나, 2025년 1월에는 3,102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백시 승격 당시 (현)장성동에는 초등학교 4개교, 중학교 2개교, 고등학교 2개교가 있었으며, 장성동 지역민들 대부분은 '장성광업소'에 다니는 광부 가족들로 삶의 터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했던 장성광업소는 2024년 7월 1일부로 폐광 되었고, 장성동 지역 주민들도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으러 타지역으로 이사를 하며 인구수도 가파르게 줄었다.
태백시 최고 호황기를 누리던 1980년대, 당시 동네 강아지들도 만원짜리를 입에 물고 다닐 정도 였다.
당시 광부의 아들 딸로 자라던 장성동 일대 어린 꿈나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걸어서 통학 했던 그 길을 걸어 보았다.
장성동 일대 높은 산에는 5,6월에도 눈이 쌓여 있다는 태백시에, 얼마전 폭설로 차도만 제설 작업이 되었고 주택가 가정집 입구에는 사람들만 오갈 정도로 눈만 치우고 있는 모습들도 걸으며 볼 수 있었다.
먼저, 태백시 황지에서 장성으로 가는길 초입 (옛)계산동 태백초등학교에 도착 했다.
태백초등학교 건너편, 계산동의 명소 '장명사'를 따라 걸어 오르는 길 옆 비탈진 곳으로는 예전의 주택들이 아직도 그대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어 장성광업소사택아파트와 장성농공단지가 들어 서 있고, 오르는 길에서 장성 일대와 장성광업소가 한눈에 보였다.

다시 계산동을 내려와 장성으로 가는 길에서 금천동으로 가는 입구 다리에 이른다.
금천동 입구 다리에서 금천으로 약400m 정도 가면, 우리나라 최초로 석탄이 발견된 장소 '최초석탄발견지탑'을 볼 수 있다.
장성동 시내 방향으로 걸어 나가다 보면 우측으로 '황지천'이 흐르고, 황지천 건너편에는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이 보인다.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과 장성초등학교로 갈 수 있는 '보드미교'에 이르면, 대한민국 최대 석탄 광업소 '장성광업소' 입구에 도착 한다.
장성광업소 입구 기둥에는 '즐거운 일터 새장성 건설'의 표어가 쓰여 있지만. 예전에는 '우리는 산업역꾼 보람에 산다'는 표어가 쓰여져 있었다.

장성광업소를 지나 우측 방향으로 장성 시내에 이르는 '장성교' 다리에 도착한다.
장성교를 건너 장성 시내를 바라 본 첫 느낌은 자동차 한 대 지나가고, 사람 한명 지나가지 않는 너무도 조용한 동네로 느껴졌다.
걸어 오는 길에 추억의 333 다방 커피가 떠올라 근처를 둘러 보던 중 '태백다방' 이라는 상호를 발견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오늘은 쉽니다'라는 안내 글에 문은 닫혀 있었서 커피 한잔 마시지 못하고 다시 걸어 나아갔다.
언제고 다시 찾아 오면 추억의 333 다방 커피 한잔 마셔 볼 수 있겠지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태백다방 건너편 '유정 모텔' 앞에 이르렀다.
유정 모텔은 예전에는 '장성 영화관' 건물 이었으며, 태백 호황기 시절 장성 지역민들에게는 영화 관람 최고의 명소였다.
유정 모텔 옆 작은 동산에는 팔각정 모양의 쉼터도 있고, 장성의 맛집으로 유명한 '태성식당'을 지나 '석공마트'에 도착 했다.
예전의 석공마트 건물 2층에는 독서실이 자릴 했으며, 지역 학생들이 많이 찾아 공부 하던 곳이기도 했다.
석공마트 앞 건너편으로는 포장마차들이 줄지어 있다.
이곳에 아담하게 차려진 포장마차들은 탄광촌 호황기 시절 24시간 운영을 했을 정도로, 장성광업소 3교대 근무 당시 최고의 호황기를 누리기도 했었다.
잠시 점심 식사를 위해 몇몇 포장마차 문을 열고 들어 가려고 했었으나, 좁은 공간에 이미 손님들로 가득해서 포기하고 돌아서고 말았다.

장성 포장마차 거리를 지나 '장성초등학교' 앞에 이르렀다.
장성초등학교는 1938년 5월 14일 개교 되었으며, 80년대 학급당 8개 반까지 있었지만 인구수가 줄어든 지금은 학급당 1개 반으로 전체 학생수는 62명(남 28명, 여 34명)이고, 교원수는 12명(남 6명, 여 6명)으로, 교원 1인당 학생수는 7.8명이다.
장성초등학교의 교훈은 '스스로 공부하며 바르고 슬기로운 어린이' 이며, 교화는 '개나리', 교목은 '전나무' 이다.
또 학교 입구에는 (옛)화광동 어린 학생들이 학교를 오르고 내리고 하던 '예배당 고개'가 있으며, 예배당 고개 정상에는 '장성중앙교회'가 자릴하고 있다.

예배당 고개를 넘어 가면, (옛)화광동이 나오는데, 3층 건물 50여개 동의 화광동 아파트가 있던 자리에는 '타워빌 아파트, 태백장성LH아파트, 태백시 시설관리공단, 태백 작은 영화관, 복합 커뮤니티센터'가 자릴 하고 있다.
지금의 화광동 아파트 자리는 예전의 모습이 확 사라진 상태 이지만, 그러나 어디 한 곳 추억의 장소가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걷다보니 '장성동 행정복지센터' 건물 뒷편에 '화광슈퍼'를 찾았다.
이곳이 예전의 화광슈퍼 자리 였음을 알려주는 간판과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의자도 아담하게 꾸며져 있었다.
장성을 걸으면서 새로운 마트, 편의점도 곳곳에 보였지만, 화광동에서 가장 오래도록 지역 골목 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대영슈퍼'가 타워빌 아파트 뒷편에서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옛)화광슈퍼 자리를 지나 '화신촌' 주사랑감리교회 방향으로 걸어 올라 갔다.
길 입구에는 '광부의 길'이라는 펫말과 갱도 모양의 아트 설치가 눈에 들어왔다.
'광부의 길'을 잠시 오르며 얼마 지나지 않아 무인 카페 '화신촌 믹스카페'를 발견 했다.
목도 마르고, 커피도 한잔 할 겸 방문 해 보았다.
무인 카페를 처음 방문 해 보아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 자판기 앞의 설명서를 보면서 커피 한잔을 뽑을 수 있었다.
아늑한 분위기의 '화신촌 믹스카페' 내부는 깔끔하고 운치도 있었다. 특히, 카페 외부 데크에서 내려다 보이는 장성의 전경을 한눈에 담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화신촌, 중앙시장, (옛)화광동 아파트 자리, 협심동 등을 가까이에서 보듯 다 볼 수 있었다.
다시 발걸음은 화신촌을 내려와 '장성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장성중앙시장은 오래 된 삶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장성중앙시장 5일장은 5일 간격으로 열리는 장이 아니고 매달 4일, 14일, 24일에 열린다.
또한 시장 내에는 맛집으로 유명한 '서울 닭갈비', '장성 닭갈비'를 비롯 해 여러곳이 아직도 성업 중이다. 그러나 인구수 소멸로 인해 시장 내부에는 빈 점포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장성중앙시장 입구에는 지금까지도 오래도록 자릴하고 있는 '맘모스'와 '정현 미용실' 간판도 보였다.

장성중앙시장 옆으로, 화신촌 마을로 걸어 나갔다.
잠시 걸어 올라가 보니 '아빠! 오늘도 무사히' 라는 글귀의 '장성갱' 모형으로 꾸며진 '탄탄마을 동발갱도주막' 등도 보였다.
장성중앙시장과 화신촌 일대에서는 매년 9월경 '장성 탄탄마을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화신촌 걷는 길에서는 정겨운 오래된 간판들과 지금도 연탄으로 난방을 하고 있는 모습들을 볼 수도 있었다.
'88오락실'과 '장성 튀밥집'의 현재 운영 상태는, 외부 모습만으로는 판가름 할 수가 없어 보인다.

화신촌을 걸어 다시 중앙시장을 지나 태백경찰서 방향으로 걸어 나갔다.
태백경찰서 앞 도로 건너 '협심1교'를 지나면, (옛)협심동 주공 아파트가 나온다.
5층 건물 9개 동의 아파트로, 80년대에는 장성에서 현대식 아파트로 불렸었다.
다시 발걸음은 태백 경찰서로 향해 걸어가는 내내 장성 시내 모습은 너무도 한적 해 보였다.
또 어쩌다 지나가는 자동차와 사람들의 모습에 시내 풍경은 너무 고요했다.

장성중앙시장으로 향한 발걸음은 이내 장성중앙시장 삼거리에 도착 하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마침 '삼미원' 중국집이 보여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을 수 있었다.
삼미원 중국집을 나와 (옛)호암동으로 걸어 나갔다.
눈이 많이 내렸던지라, 도로 옆 인도는 눈으로 쌓여 걷기에는 좀 불편도 했었다. 그래도 간혹 걷기 운동을 하러 나온 아주머니들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협심2교' 호암동 입구에서 하장성까지 나와 같이 걷게 된 아주머님도 있었다.
협심2교 다리 위에서 흐르고 있는 황지천을 보며, 예전에는 검정색 색상의 물이 지금은 아주 맑은 하천 물로 변해 있었다.
이곳 호암동에는 그옛날 바위가 산에서 떨어졌다는 '범바위'가 있는데, 찾아보려 했으나 찾아 볼 수 없었다.
지역에서 범바위에 얽힌 이야기와 위치를 알리는 펫말이 자세히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옛)호암동 거리를 지나, 어느덧 하장성 (옛)문화동 입구 '양지 마을'에 이르렀다.
양지마을은 약20여채의 주택과 연립 아파트로 '환경시범마을'과 '화재없는 안전마을'로 선정 된 곳이다.
또한 이곳 양지마을의 명소는 '비와야 폭포'이다.
말 그대로 평소에는 폭포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비가 내리면 폭포로 변하여 비와야 폭포라고 불린다.
양지마을을 지나 (옛)장성여중·고 학교 입구에 도착했다.
예전의 장성여자고등학교는 지금의 문곡동으로 이전을 하였고, 현재는 태백중학교 교명으로 2021년 3월 1일부터 장성여자중학교와 통합되어 운영되고 있다.
태백시 지역 인구 감소로 인해 학교들은 통합되고, 학급수와 학생수도 절감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옛)장성여중고 입구에서 '강원특별자치도 태백교육지원청'을 지나 장성제일교회 앞에 이르면, 하장성 일대를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다.
멀리 '365세이프타운'과 '한국항공고등학교'가 보인다.
다시 길을 내려와, 하장성 시내를 걸어 (옛)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 방향으로 나아갔다.
하장성 시내에는 점포 앞에 쌓인 눈을 치우는 주민들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이내 발걸음은 (옛)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 앞 '평화교' 입구에 도착을 했고, 학교를 오가는 다리를 건너도 보았다.
(옛)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는 1951년에 '태백공업고등학교' 광산과, 토목과, 전기과 3개 과로 개교 하였으며, 1976년에 '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2024년 3월 1일부터 '한국항공고등학교'로 교명이 변경 되었다.
(옛)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 입구 다리를 나와서 (옛)태백중학교 방향으로 걸어 나아갔다.
(옛)태백중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 있는, 태백중학교 '학도병'의 벽화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몇걸음 더 걸어 나가니, 오늘 도착지점 (옛)태백중학교 '태백중교' 다리 입구에 도착을 했다.
(옛)태백중학교는 1948년 4월 1일 개교를 했으며, 1951년 1월 8일 태백중학교 교정에서 6.25전쟁 참전을 결의 하고 127명의 학도병이 참전을 했다.
태백시 장성 인구수 변화에 따라 1966년 태백중학교와 장성여자중학교로 분리 하였고, 1970년 태백공업고등학교에서 분리 되었으며, 2021년 3월 1일 태백중학교 교명으로 장성여자중학교와 다시 통합하는 희귀한 일도 생겼다.
운동장 한쪽에는 '태백중학교 학도병 기념관'이 있으며, 6.25전쟁에 참여했던 127명의 학도병들을 기리는 '충헌탑'도 있다.
학도병들은 보병 제3사단 23연대의 특공대로 많은 공을 세웠으며, 군번을 받은 1951년 6월 1일을 기념하고 전사한 18명에 대한 추모제를 매년 6월 1일에 거행하고 있다.
현재, (옛)태백중학교는 (옛)장성여자중학교 위치로 이전 된 상태이다.

오늘 걷는 동안 젊은 층들은 보이지 않고 70~80대 어르신 분들만 본 것 같은 쓸쓸한 마음에, 두다리도 몸도 무거운 걷기 이었던것 같다.
1980년대 석탄 도시로 호황기 시절을 누렸던 태백시 장성을 걸으며, 지난 시절 탄광 지역의 삶을 잠시나마 느껴 볼 수도 있었고, 장성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걸어보는 듯한 뜻깊은 추억의 도보 여행 시간이었다.
석탄산업합리화로 고향 장성을 떠나야만 했던 분들도, 다시 장성 경제가 살아나 인구수도 늘고 관광객들도 늘어서 한강의 기적처럼 다시한번 제2의 장성이 되기를 응원하며 기대 해 본다.
오늘 걷는 일정은 이것으로 마치고, 머리 스타일 변신을 의뢰한 분을 만나러 태백시 '용정마을'로 향했다.

용정마을의 한 주민은, 얼마전 폭설 때 눈이 약70cm 가량 내렸다고 한다.
머리 헤어 스타일을 변신 해 드리러 가는 도로 옆에도 제설로 쌓인 눈을 보며 대충 가늠 할 수 있었다.
오늘 머리 컷트를 하러 가는 곳은, 통동의 '태백산채마을' 이다.

태백산채마을에 도착해 메고 걸었던 가방을 내려 놓고, 가방 속의 컷트 도구들을 꺼내 준비를 하던 중 주인 아주머님을 만나 첫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공장에서 하루종일 모자를 쓰고 일을 하시느라 머리카락도 두피에 많이 눌려 있는 상태이고, 모발 관리가 없으셨는지 모발은 좀 뻣뻣 했지만 양호 한 상태였다.
집안에서 의자를 가져 오시고, 널직한 마당에 자리를 잡았다.
어떤 스타일로 헤어 스타일을 만들어 드릴까 잠시 고민 하며, 컷트를 시작했다.

컷트를 해 드리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기도 하고, 태백산채마을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 주셨다.
주인 아주머님은 태백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 주시고, 용정마을 이야기도 해 주셨다.
또 아주머님은 나에게 "오늘 걸으시는데 안 추우셨어요?라고 물어 보시기에 "걸을때는 한여름 처럼 더웠는데요, 지금이 가장 추운거 같아요. 컷트 하는데 손이 시렵네요~"라고 말했다.
햇볕으로 날씨는 따뜻하나, 그래도 태백이라 찬바람으로 춥기도 했다.
그것도 컷트를 하기 위해 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손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만지니, 찬바람에 손이 시려웠다.
헤어 스타일이 거의 완성 되어 갈때 쯤, 모발 관리와 헤어 스타일 연출 법을 간략하게 설명도 해 드렸다.
옆에서 컷트 하는 모습을 지켜 보던 아들이, 엄마의 변하는 머리 스타일을 보면서 일반적인 컷트 기법이 아닌것 같다며 마음에 들어 한다는 말도 해 주신다.
잠시 후, 태백산채마을 사장님이 외출 하시고 오셨다.
사장님은 아주머님께 "이 분이 유명한 걷기 강사야~"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속담도 있듯이, 하는수 없이 걷기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머님의 걷는 모습을 관찰도 하고, 몇가지 테스트도 해 보았다.

몇가지 걷기 관련 테스트를 마치고, 또 가방 속에서 맞춤 깔창 제작 할때 사용하는 도구 준비물 들을 꺼냈다.
하는 수 없이, 가족들 모두 각자 신던 신발들을 가지고 나오라 하고, 걷기 테스트 결과에 따라 각자 걷는 자세에 맞게 태백산채마을 식구 모두에게 즉석에서 바른 자세로 걸을 수 있도록 깔창을 만들어 드렸다.
또 아드님은 어떻게 걷는지, 깔창에 구멍들이 다 났다.

즉석에서 바른 자세로 걸을 수 있도록 깔창을 만들어 드리고, 아주머님께 다시 걸어 보라고 했다.
옆에서 지켜 보던 식구들이, 아까와는 다르게 확실히 바르게 걷는것이 보인다고 말들을 한다.
아주머님도 맞춤 깔창으로 걷는데 편하고,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말을 하신다.
태백시의 장성을 걸어도 보고, 가지고 있는 재주를 기부 했다는 마음에 뿌듯한 하루를 걸은것 같다.

(본 기사 및 컷트와 깔창 관련해서 돈 또는 금품 등을 요구 하지 않으며 일체 받지 않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