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노믹스 전상천 기자 |
올해 광복절에 경기도 하남시 출신 구승회(具承會) 독립유공자가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구승회 독립유공자 포상은 구자관 하남시3.1독립운동기념사업회장이 각종 자료를 찾고,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 고증을 확보하는 등 3년여의 끈질긴 추적 끝에 이루어져 더욱 의미가 있다.
정부는 지난 8월15일 제77주년 광복절을 맞아 303명의 독립유공자를 발표하면서 애국장 19명, 애족장 60명, 건국포장 24명 대통령표창 200명 등 303명을 포상했다.
이 가운데 하남시 감일동 출신인 구승회(동아일보 기사 사진 아래 가운데) 독립유공자가 ‘건국훈장 애족장’을 포상 받았다.

구자관 회장은 현재 구승회 독립유공자 자손들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직접 독립운동 당시 공적을 찾아 국가 보훈처에 상신했고, 그 공로가 인정되어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구승회 독립유공자는 하남 감일동(광주군 서부면 감일리, 효죽동) 출신이다. 그는 27세의 젊은 나이에 서울 공덕동 용일양조장에서 의혈청년 6명이 조선총독부 고관을 폭살하는 계획을 세웠다. 구 선생 등 의혈청년 6명은 평소 존경하던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사 등이 하던 방식으로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구승회를 비롯한 청년들은 조선총독부 총독 우원(宇垣一成)과 정무총감 등 각 고관들을 폭살하고 철도 체신국 등 주요기관을 폭파하는 계획을 세우고 몇 차례 수정을 하기도 했다.
헌데, 일본 사복 경찰이 주동자 조안득(曺安得)이 평소 일제 규탄을 자주 하고 다닌 것을 빌미 삼아 용일양조장을 급습, 의혈청년들을 모두 체포함에 따라 구 선생 등의 일본 제국주의 타도 계획은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이들 애국 청년들은 누구에게 지시를 받거나 단체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발적으로 일제 타도의 목표를 세우고 추진한 것에 큰 의미가 있다.
더욱이 양조장이라는 노무직에 근무하면서도 빼앗긴 나라의 독립을 위해 토론을 하고 모임을 조직한 청년들이라는 점에서 귀감이 되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은 1935년 12월 28일이었지만 언론에 보도된 것은 이듬해 8월 7일이었다. 일제는 이 사건을 쉬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구승회는 징역 2년을 선고 받고 복역했다.
하남시3.1독립운동기념사업회 구자관 회장은 “이번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구승회는 3.1독립운동 당시 하남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유공자 구희서(具羲書)의 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구희서는 3.1만세 독립운동 당시 감일동과 감북동 등에서 주민들을 이끌고 ‘대한독립만세’ 운동을 펼친 열혈 애국자"라며 "아버지와 아들이 하남시 독립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긴 흔치 않은 사례”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