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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스포츠


<송동윤의 '영웅의 부활'> 장국영과 한동훈, 그리고 한신

백면서생, 천하제일검, 그리고 별의 순간

뉴스노믹스는 '영화 같은 한국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 보는 <송동윤 영화감독의 '영웅의 부활'>을 집중 연재한다. 오랜 시간을 소설과 영화 시나리오, 평론적 글쓰기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튼튼하게 구축해 온 송 감독은 '영웅의 부활'을 통해 영화를 통해 본 가상속 세상에서 우리네 현실과 밀접한 인물들을 반추, 정치사회 전반에 걸쳐 깊은 사유의 세계를 보여준다.  <뉴스노믹스> 독자들을 자신의 과거 속에서 만난 영화 같은 삶을 산 인물들을 통해 현재을 되짚어보고, 우리에게 다가올 새로운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편집자 

 

 

 

 

1. 장국영과 한동훈, 그리고 한신

 

 

2003년 4월 1일. 홍콩 중심가의 호텔 24층에서 한 사내가 몸을 던졌다. 자살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그날이 만우절이었으니까. 그런데 사실이었다. 하필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저세상으로 가버리다니…. 허망했다. 그 사내가 바로 배우 장국영이었으니까. 불혹의 나이임에도 여전히 해맑은 소년의 얼굴로 세상의 인기를 한 몸에 누려왔던 스타의 자살이라서 충격은 더 컸다.

 

 

그로부터 몇 달 후, 그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나는 그를 만나려고 일부러 영화관을 찾았다. 건물에 내걸린 그의 유작 <이도공간(異度空間)>의 간판이 슬픈 영혼처럼 비를 맞고 있었다. 그런데 소름 돋게도 그는 이 영화에서도 자살했다. 건물 옥상에서 자기 손으로 자기 등을 떠밀어 버린 것이다. 현실에서 일어날 일을 예고나 하듯이….

 

이와는 분위기가 다른, 장국영이 검객으로 나왔던 작품도 있다. 왕가위 감독의 무협 영화 <동사서독>이다. 왕가위는 여기서 기존의 무협 영화의 틀을 깼다. 권선징악을 주관했던 절대지존의 영웅주의를 해체하고 대신 그 자리에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고독한 인물들을 등장시켰다. 화두는 사랑이었다. 사막을 건너 불어오는 바람이 쓸쓸하게 격정적으로 그들을 허무의 세계로 몰아넣었다. 사랑은 결국 엇갈리고 비켜나가 파국에 이르렀다.

 

왕가위의 시선은 그들의 내면으로 향했다. 실연의 상처를 부여안은 채 사막의 모래바람에 묻혀 사는 검객 서독, 과거를 잊기 위해 취생몽사(醉生夢死)라는 술에 의존해서 세월을 보내는 협객 동사, 사랑을 잃고 그 기억으로 고통받는 비련의 여인 등 그들의 적은 천하를 놓고 겨루는 검객이 아닌 바로 그들 자신의 내면이었다.

 

이제 현실로 돌아오면, 벌써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나는 아직도 영화 속 그들을 추억하고 있었다. 홍콩영화의 전성시대를 함께 했던 세대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한 동네에서 유년 시절을 같이 보냈던 친구들만큼이나 그들이 그립지 않은가? 장국영, 임청하, 양가휘, 장만옥, 양조위…. 그들 중에 가장 눈길이 가는 검객은 서독 장국영이었다. 얼굴만 보면 백면서생(白面書生)인데,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이라니…. 영화 속의 그의 대사가 여운으로 남았다.

 

“천하를 얻기 위해서는 여자를 버려야 하는 줄 알았지.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그녀는 내 형수가 돼 있더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런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가 그곳에서도 취생몽사를 들이키며 망각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독일 유학 시절이었다. 도착해서 한동안은 독일어라는 맷돌에 깔려 나는 간신히 숨을 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강의를 끝내면서 “다음 강의는 휴강입니다”라는 교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다음 주에 빈 강의실에서 혼자 앉아있었으니, 그럴 때마다 “이러고도 내가 학위를 받을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즈음에 <영웅본색>을 보았다. 우정과 의리로 똘똘 뭉친 가슴 따뜻한 사내들이 거기에 있었다. 다른 세상이었다. 나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던가. 그들의 삶이 부럽게 다가왔다. 주윤발과 장국영, 그들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줬고, 그 기분으로 나는 에너지를 충전했다.

 

지금 다시 본다면 <영웅본색>은 옛날 영화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그들이 연기한 인물들을 사랑했다. 그들의 세계에서 그들은 ‘강호의 신의와 도의’가 뭔지를 선명하게 보여줬으니까. 그런데 그 시대의 사회는 어떤가?

 

“이 세상에는 갈 곳이 없다. 그자들은 끝까지 따라오니까.”

 

영화 속 주윤발의 독백처럼 그들의 사회에는 안전지대가 없었다. 법이 더는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그는 “내가 신이야.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자가 바로 신 아니겠어”라며 스스로 자기 운명을 주관하는 신 같은 존재이기를 원했던 것이다.

 

사실 우리의 1980년대도 희망이 없는 시대였다. 광주를 짓밟고 등장했던 전두환 정권 7년 그 깜깜한 터널에서 사람들은 영웅의 출연을 목말라했는지도 모른다. 절망이 길어지면 어둠의 자식들이 영웅으로 대접받기도 한다. “나 떨고 있냐”를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모래시계>의 정치깡패 박태수가 그랬고, 부패한 공권력을 희롱해서 환호성을 지르게 했던 탈옥수 신창원이 그랬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풍경이다. 최근에 우리는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스토킹하면서 주거 침입하고 보복하는 무법천지를 목도 했다. 나는 그 뒷배가 궁금해서 시선을 여의도로 돌렸다. 오늘도 우리의 불량들은 편을 갈라 막장으로 싸우면서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공정과 정의, 상식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파멸로 가는 길이다. 우리는 이미 그 길에 들어섰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장국영으로 돌아와서, 그전에는 그 배우를 몰랐다. <영웅본색>에서 처음으로 봤다. 예뻤다. 첫인상이 그랬다. 혹시 남장여자가 아닐까. 순간적으로 그런 의심도 해봤다. 그런데 하필 조폭 잡는 경찰이라니….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생각이 바꿨다. 그는 정의롭고 책임감이 강한 바른생활 사나이였으니까.

 

여기 장국영을 닮은 사람이 있다. 바로 한동훈이다. 그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후로 뉴스 시간마다 단골로 등장했고, 이제 나는 그의 모든 것들에 익숙해졌다. 양복, 넥타이, 가방, 시계, 안경, 구두, 머리 스타일…. 그의 체격에 어울리는 흠 잡을 데 없는 패션이었다. 장관이라기보다는 배우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마스크에 가려져 있는 그의 얼굴이. 어느 날 뉴스에 주먹만 한 그의 멘 얼굴이 나왔다. 그것도 클로즈업으로…. 예상대로 준수한, 아주 여성스러운 용모였다. 장국영을 처음 봤을 때의 그런 인상이었다고나 할까. 그것이 나의 흥미를 자극했다.

 

지난 3월에 정권교체로 대한민국은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했다. 그러나 구석구석의 권력은 여전히 좌파들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 소굴에서 “저 연약해 보이는 샌님이 장관직이나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는지…”하는 그런 염려가 있었다. 그러나 기우였다. 한동훈은 사안마다 피하지 않고 단호하게 맞섰다. 거침이 없었다. 그의 어휘력 또한 풍부해서 질문하는 여의도의 불량들이 도리어 제압당했다. 그는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상대를 주시하면서 주어와 목적어가 분명한 어법으로 전혀 흐트러짐 없이 핵심을 딱딱 집어내서 말을 명쾌하게 구사했다. 직설적이고 논리적이었다.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어느새 과녁이 돼 있었다. 세금으로 월급 받는 불량들은 기회를 엿보다가 빈틈을 노려 비수를 날렸다. 한 놈만 패자였다. 조폭처럼…. 그러나 결과는 항상 똑같았으니 그들은 그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누가 봐도 완패였다. 사실 그들이 사용하는 수법은 심오하지도 못해서 누구나 그들의 속셈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것은 밖에 있는 자기편이 의혹을 제기해주면 여의도의 불량들이 그것을 받아 키우고 선동하는 그런 것이었다. 정신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단번에 알 수 있는 거짓말도 그들만은 소란 떨며 제2의 국정농단으로 몰고 갔다. 그중에 청담동 술집 사건이 클라이맥스를 장식했다. 대통령이 첼로 연주에 맞춰 <동백 아가씨>를 불렀다나…, 이걸 진짜로 믿었다면 천치바보고, 알고도 그랬다면 사악하다. 이러고도 창피를 모르는지…, 고개 쳐들면서 당당했다. 세상에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그들을 ‘정치깡패’로 지칭했던 한동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처음 그대로의 그 모습이었다. 출퇴근 시간마다 그의 앞을 막아서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귀찮아하는 표정 없이 성실하게 답변했다. 지금까지의 그의 언행으로 판단하건대, 그는 바른생활 사나이가 분명했다.

 

중학교 시절에 읽었던 무협지에서 초반에 백면서생으로 등장한 인물은 나중에 보면 대개는 천하제일검이었다. 검사 시절 조선제일검(朝鮮第一劍)으로 명성을 떨쳤던 한동훈도 과연 그럴까? 나는 인터넷에서 그의 프로필을 검색해봤다.

 

‘강남 8학군. 서울대 법대. 아이비리그 출신. 검사 시절부터 윤석열의 최측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특수통으로 근무. 최태원, 정몽구, 이재용, 이명박 등 정·재계 거물들을 수사하고 구속함. 제69대 법무부 장관.’

 

대단한 경력이었다. 주변에서 왜 그를 ‘리틀 윤석열’이라고 하는지 알겠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아니다. 두 사람의 캐릭터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나는 그와 비슷한 인물을 초한 전쟁에서 소환하였다. 윤석열은 항우고 한동훈은 한신에 가깝다.

 

그의 출생이 그랬다. 한신은 천민으로 거지나 다름없었다. 그의 외모는 보잘것없다고 했으나, 고우영 만화 <열국지>에서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는 한신이 가장 예뻤다. 그 영향이 컸다. 그 이후로 나는 그를 연약한 여자 같은 예쁜 한신으로 기억했으니까. 그러나 그는 천재적인 전략가에 백전백승의 전쟁 신이었다. 바로 그거였다. 나는 한동훈에게서 한신의 압도적인 그런 것들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진시황이 죽고 천하가 전쟁으로 요동칠 때 처음에 그는 항우에게 몸을 의탁했으나 그의 능력을 몰라주는 데 불만을 품고 유방에게로 가서 대장군이 되었다. 그 후 여러 제후국을 정복해 나가면서 마침내 기원전 203년 해하전투에서 항우의 30만 대군을 격파했다. 한신의 승리 덕분으로 밥보다 술과 여자를 더 좋아했던 동네 건달 유방은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수할 수 있었다.

 

복기해 보면, 한신에게도 천하를 움켜쥘 ‘별의 순간’(Sternstunde)이 있었다. 그때가 언제였을까? 유방과 항우가 치고받고 싸우는 동안 한신은 북방의 제후국들을 평정하러 다녔다. 배수진을 이용해서 조나라를 멸망시켰고, 연나라는 조나라의 장수였던 이좌거의 책략에 넘어가 항복했다. 이제 제나라만 남았다.

 

그때 유방은 제나라를 회유하기 위해 책사 역이기를 보냈다. 제나라 왕 전광은 역이기의 감언이설에 속아 투항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역이기는 제나라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던 한신에게 서신을 보냈다. 공격을 멈추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제나라를 정복해서 한신을 독립된 왕으로 만들고자 했던 모사 괴철은 한신에게 항우, 유방, 한신의 3국 분할을 권했다. 이른바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였다. 한신은 괴철의 간언에 따라 제나라로 쳐들어갔다. 항복해서 긴장을 풀고 있다가 갑자기 한신의 공격을 받은 제나라 왕 전광은 역이기의 술수에 속았다며 그를 기름에 튀겨 죽였다. 한신은 혼란에 빠진 제나라를 손쉽게 멸망시키고 스스로 왕좌에 올랐다. 이 일을 계기로 유방이 한신을 두려워하고 불신하게 되었으니, 황제의 자리에 오른 유방이 한신을 살려주고 싶었을까? 그에게 한신은 배신자일 뿐인데….

 

내 상상으로는, 그때 한신이 괴철의 간언대로 유방에게서 완전히 독립했다면 그 이후의 역사는 한신이 주도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에 의해 천하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당시의 ‘별의 순간’은 아무도 모른 채로 사라져버렸다. 한신은 황제가 된 유방 밑에서 이리저리 생존을 궁리하다가 토사구팽을 거쳐 참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한신은 유방도 인정하는 천하제일검이었다. 행정의 달인 소하가 그를 국사무쌍(國士無雙)으로까지 치켜세울 정도로 대단한 인물임에는 분명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도래하자 그는 무기력해졌다. 비정한 정치판에서 그의 처세술은 어리숙했고, 천하의 인재들은 그에게 오지 않았다. 그 점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백수건달 유방과 비교되는 대목이었다. 사마천은 사기 <회음후열전(淮陰後列傳)>에서 한신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만약 한신이 도리를 배우고 겸양의 미덕을 발휘하여 자기의 공을 과시하지 않고, 자기의 재능을 과신하지 않았다면, 그가 새운 공은 아마 주나라 천년 왕조의 기틀을 마련한 주공(周公), 소공(召公), 태공(太公)이 세운 공훈에 비견되어 후세들로부터 혈식(血食)을 받아먹으며 받들어졌을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는 승자의 기록이다. 나는 이러한 평가에 개의치 않는다. 나에게 한신은 언제나 천하제일검이었으니까. ‘별의 순간’을 놓친 그가 안타까울 뿐이다. 그로 인해 회자 되었던 국사무쌍(國士無雙), 과하지욕(袴下之辱), 배수진(背水陣), 토사구팽(兔死狗烹), 사면초가(四面楚歌) 등의 고사성어들은 2200년이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인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 3월에 대선이 끝났다. 지금은 흥망성쇠의 시간이다. 누군가는 감옥에 갈 것이고, 5년 후에 누군가는 ‘별의 순간’을 잡을 것이다.

 

 

 

송동윤 영화감독은

 

송동윤 감독은 그동안 시나리오를 만들고, 영화를 제작·연출하는 건 물론 대학에서 영화학도를 가르치고, 영화를 평론하고, 소설을 쓰는 등 전방위적으로 활동해 왔다. 현재 ‘무비웍스’에서 네플릭스에 선보일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송 감독은 <서울이 보이냐>, <바다 위의 피아노> <학교 반란> 등의 영화를 제작·연출했다. 또 ‘HID 북파공작원’(2000·시나리오), ‘우리 선생님’(2002·시나리오), ‘송동윤의 영화로 보는 세상’(2002·평론집), ‘흔들리면서 그래도 사랑한다’(2012·소설), ‘블랙아이돌스’(2014·소설), ‘5월 18일생’(2020·소설) 등을 썼다.

독일 보훔대학교 (Ruhr Universitaet Bochum) 연극영화 TV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한일장신대 연극영화과 교수 등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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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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