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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스포츠


[송동윤의 영웅의 부활] '라이언일병구하기', 국가의 존재 이유와 월북몰이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 죽임을 당해도 좋은 국민은 없다."

[송동윤의 영웅의 부활] '라이언일병구하기', 국가의 존재 이유와 월북몰이

 

 

파주 광탄면에는 마장 호수가 있다. 옛날에는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저수지였는데, 호수 위를 가로지르는 220m 길이의 흔들다리가 만들어지면서부터 관광명소가 되었다. 나는 마장 호수 근처에 살고 있다. 멀리서 보면 정적에 잠겨있지만 다가가면 모든 것이 바쁘게 움직이는 분주한 마을이다. 계절마다 자기들이 알아서 피고 지는 꽃들이 집 앞을 지나는 골목을 꾸며주고 있다. 이 아름다운 마을은 지난 1951년 6.25 전쟁 당시에는 참혹한 전투를 벌였던 격전지였다.

 

4년 전의 일이었다. 우리 마을에는 4월이면 자목련이 유난히 붉게 피는 한옥이 있다. 6.25를 겪으신 마을 어르신은 그 나무 밑에 국군 유해가 묻혀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2018년 7월에 그 어르신의 제보로 국군 유해발굴단이 그 자목련 나무 밑에서 유해발굴을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은 설마 했는데 발굴 10여 일 만에 유해를 찾아냈다. 고지를 사수하다 숨진 우리 국군이었다. 그동안 차가운 흙을 덮고 홀로 누워있다가 70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오랜 세월 동안에 국군은 고향과 그 고향 집에서 그를 기다렸을 엄마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그런데 유해발굴 다음 해부터 자목련은 7월에도 피었다.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국군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 슬픔과 고통이 한 송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났다고 나는 믿었다.

 

국군이 태극기에 덮여 마을을 떠나는 날 나는 추억의 기차에 올라탔다. 그 시절, 유년 시절에 도착했다. 나는 푸른 제복의 국군을 좋아했다. 자부심을 느끼고 자랑스러워했다. 그 시작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아마 반공교육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몇 장면이 떠올랐다. 그 당시 모든 초등학교의 풍경이었다. 그날은 반공 웅변대회가 있는 날이었다.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였고, 교장 선생님이 훈시하는 단상에는 비장한 표정의 아이가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저 북쪽에는 피에 굶주린 이리 떼 같은 공산당이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이때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죽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것임을 알고….”

 

연사의 목소리가 얼마나 우렁차고 호소력이 있던지 나는 딴짓을 못 하고 집중하고 있다가 그 정점에서 손바닥이 아프게 손뼉을 쳤다. 이에 호응하여, 연사는 오른손과 왼손을 치켜들고 한마디 한마디를 끊어서 목청껏 외쳤다.

 

“김일성 도당을 때려잡기 위해서 이 한목숨 죽어도 좋다고 자나 깨나 공산당의 만행을 잊지 말자고 이 연사 소리높여 외칩니다.”

 

나는 벌써 감동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상기된 표정으로 공산당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다짐이 가슴속으로 차올랐다. 그때 내 시선은 본관 건물 중앙에 있는 국기봉으로 향했다. 그 끝에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웅변대회가 끝나고 미술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진지하게 크레용으로 반공 포스터를 그렸다. 완성된 그림 대부분은 이빨을 드러낸 빨간색의 늑대와 평화를 상징하는 파란색의 비둘기였다. 반장은 우리 국군이 총에 꽂혀있는 대검으로 공산당을 찌르는 장면을 그린 다음에 빨간색 크레용으로 꾹꾹 눌러서 글씨를 썼다. “무찌르자 공산당!”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음악 시간에 배운 월남전 군가를 목청껏 불렀다. 우리 동네는 초등학교에서 출발해 논밭 길을 20리가량 가다 보면 그 길이 끝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었다. 산과 저수지로 둘러싸여 있는, 가끔 꿩의 울음이 정적을 깨는 그런 마을이었다. 문명의 저편이었다. 우리들의 놀이도 그랬다. 자치기나 땅따먹기, 전쟁놀이나 숨바꼭질 등이 놀이의 전부였다. 그중에서도 전쟁놀이는 애국심을 불러일으켰다. 산과 들은 총싸움 놀이터였다. 우리들의 손에는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산 플라스틱 물총이나 나무로 만든 장총이 들려있었다. 진짜 전쟁도 아닌데 모두가 비장한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서로를 향해 아무리 총을 쏴도 죽은 사람은 없었다. 그 유년 시절의 총싸움이 내가 군에 입대하면서 총에 맞으면 죽는 진짜 총싸움으로 이어졌다. 나는 수도방위사령부에서 30개월 군 생활을 했다.

 

20세기는 전쟁으로 시작해서 전쟁으로 끝난 악몽의 세기였다. 당연히 전쟁을 소재로 해서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졌다. 1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반전영화가, 2차 세계대전 전후에는 영웅을 등장시켜 승리와 애국심을 부추기는 영화가, 베트남전 이후에는 주로 전쟁의 후유증을 다룬 영화가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상을 가장 많이 받은 장르가 바로 전쟁영화였으니 그만큼 전쟁은 인간의 삶과 죽음, 파괴와 야만을 집약해서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편의 완벽한 드라마인 셈이었다.
 

애국을 강조하는 미국 영화에는 성조기가 등장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그랬다. 이 영화의 시작은 화면을 가득 채운 성조기였다. 그렇게 분위기를 잡은 다음에 노인이 된 라이언이 회상에 잠겼다.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의 노르망디상륙작전이 감행되었다. 오하마 해변을 맡은 밀러 대위(톰 행크스)와 그의 부대원들은 천신만고 끝에 상륙에 성공했지만, 다음 임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아직 생사가 불분명한 라이언 일병을 구해 미국으로 데려오라는 명령이었다. 군사령부가 라이언의 형 3명이 모두 전사하자 그의 어머니를 위해서 라이언이라도 귀향시키기로 했던 것이었다. 밀러와 대원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이 난리 통에 짚더미 속에서 바늘 찾기지. 왜 8명이 1명을 구하러 가야 하나?”라며 다들 한마디씩 했다. 그러나 그런 대원들도 마음속으로는 자기 엄마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들은 동료 2명이 전사하는 악전고투 끝에 라이언 일병을 찾아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났다. 라이언 일병이 자신의 부대와 운명을 같이하겠다며 귀환을 거부한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함께 전투를 치르게 되고, 밀러 대위는 전사했다. 영화는 다시 현재 시점으로 돌아오고, 성조기가 화면을 채우자 라이언이 밀러 대위의 묘비를 향해 거수경례하면서 회상은 끝났다.

 

1944년 그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보다도 더 실감 나게 다가오는 초반 25분의 전투는 “정교하기 때문이 아니라 끔찍할 정도로 정직하기 때문에 보기에 고통스럽다”라는 뉴욕타임스의 찬사처럼 이 장면들만 가지고 보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데에 그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지금 세계가 즐기고 있는 평화도 유럽을 히틀러로부터 해방한 밀러 대위와 라이언 일병 같은 미국의 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선조가 쌓아놓은 명예와 용기, 책임감과 전우애 등을 되새기면서 자랑스러운 미국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 압도적인 미국 찬가에 다른 이물질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러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미국 만세로만 끝나지 않았다. 내가 이 영화에서 본 것은 엄마였다. 아들 4명을 전부 전쟁에 보낸 라이언의 엄마였다. 다음은 전사 통지서를 받게 될 라이언 엄마의 장면이다. 여기서 누구인들 라이언의 엄마처럼 가슴이 아프지 않겠는가.

 

평화롭게 보이는 시골 들판에 집 한 채.

군용 승용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그 집으로 다가간다.

집안의 엄마는 부엌에서 설거지하고 있다.

다가오는 승용차가 창문으로 보이고…

고개를 들다가 그 승용차를 발견하는 엄마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집 마당으로 들어선 승용차에서 장교와 신부가 내린다.

엄마는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내가 꼽았던, 이 영화의 중심이 되는 장면이다. 엄마의 슬픔을 알고 있는 국가가 라이언을 데려오기로 한 것이다. 나는 여기서 감동했다. 내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주목했던 것은 국가의 존재 이유였다. 국가란 무엇인가? 애국의 의미는 무엇인가? 태극기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이 영화가 답을 해주었다.

 

내가 살아가는 이 땅에는 날마다 월북몰이가 벌어지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청와대 국가 안보실 국방부 국정원 해경 등은 북한 해역에 공무원 이 씨가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어떠한 초동조치도 취하지 않고 지켜만 보았다. 국가 안보실장은 2020년 9월 22일 오후 5시 그 보고를 받고도 평소대로 오후 7시 반에 퇴근했다. 당일 오후 10시에 이 씨가 피살됐다는 보고를 받고 3시간 뒤 관계 장관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회의 직후 관련 부처들은 월북몰이에 불리한 문건들을 폐기하고 월북몰이를 시작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 죽임을 당해도 좋은 국민은 없다. 대한민국 공무원이 표류하고 북한군 총에 맞아 불태워지는 만행이 저질러졌던 그 시간에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북한은 우리에게 한 번도 적이 아닌 적이 없었다. 내가 태어날 때도 적이었고 지금도 적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도발을 멈춘 적이 없었다. 내가 태어날 때도 도발했고 지금도 도발하고 있다. 열거하기가 숨이 찰 만큼 많다. 북한은 변한 것이 없었다. 변한 것은 대한민국의 정치인들뿐이다. 그들은 어느 때부턴가 북한 절대 권력자의 눈치를 보고 심기를 살폈다.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하면서도 평화를 구걸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고 있는데.

 

 

 

 

송동윤 영화감독은

 

송동윤 감독은 그동안 시나리오를 만들고, 영화를 제작·연출하는 건 물론 대학에서 영화학도를 가르치고, 영화를 평론하고, 소설을 쓰는 등 전방위적으로 활동해 왔다. 현재 ‘무비웍스’에서 네플릭스에 선보일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송 감독은 <서울이 보이냐>, <바다 위의 피아노> <학교 반란> 등의 영화를 제작·연출했다. 또 ‘HID 북파공작원’(2000·시나리오), ‘우리 선생님’(2002·시나리오), ‘송동윤의 영화로 보는 세상’(2002·평론집), ‘흔들리면서 그래도 사랑한다’(2012·소설), ‘블랙아이돌스’(2014·소설), ‘5월 18일생’(2020·소설) 등을 썼다.

독일 보훔대학교 (Ruhr Universitaet Bochum) 연극영화 TV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한일장신대 연극영화과 교수 등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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