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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탐사기획


<사람예술학교의 미얀마 전쟁 난민 집짓기 프로젝트 2>우리는 그들에게 민주주의의 새벽을 깨우는 종소리가 돼 줘야만 한다

미얀마 접경지대, 상아우 마을로 가다…목숨을 건 미얀마 저항 시민군을 향한 여정!

글=권태훈, 에디터=뉴스노믹스 전상천 기자 |

 

 

②미얀마 접경지대, 상아우 마을로 가다

 

"내 인생의 여정에서 왜 미얀마 시민군을 만나야 했을까?"

 

사람예술학교 권태훈 이사장은 미얀마 시민군을 만나기 위해서 인도 최동단 al조람의 주도인 #아이자울 에서 남쪽으로 226km 떨어져 있는 미얀마 접경지대인 #상아우 마을까지 달려갔다. 

 

전날 다운타운의 버스 Counter에서 표를 예매할 때 판매원이 신신당부했다.

 

“새벽 6시에 출발하니 5시40분까지는 와야 해요”

 

다음날 새벽, 권 이사장은 행여 버스를 놓칠지 모른다는 낯선 곳에서의 조바심 때문에 5시30분에 정류장으로 나갔다. 아직 어둠이 감싸고 있는 거리 한쪽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이들은 삶이 길 위에 붙어있는 사람들 만이 지을 수 있는 날생명의 웃음을 지으며 아침을 먹고 있는 풍경이다.

 

권 이사장도 바뚜레와 계란에 짜이 3잔을 곁들여 먹고 50루피 (한국 돈 700원)로 값을 치렀다. 짜이 두 잔을 더 마실 즈음 버스가 왔다.


하지만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버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버스'는 아니었다. 한국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쌍용의 코란도 같은 차량이었다. 버스는 인도의 대표 자동차 기업인 TATA가 만든 'GOLD'라는 차다.

 

그래도 권 이사장은 기다렸던 버스가 반가운 마음에 차 지붕의 제일 좋은 자리에 짐을 올려 놓고 차량에 올라탔다.

 

그러나 이른 새벽 6시는 버스 출발 시간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승객들이 하나 둘 모여드는 시간이다.

좁은 차 지붕에서 수많은 짐들이 이리저리 옮겨지며 정리되고 있는 동안 시간은 무려 1시간 넘게 지났다. 우리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아침 풍경이다.

 

짐정리가 끝난 7시 10분, 7명의 승객을 실은 버스는 아이자울을 출발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시내 이곳 저곳을 돌며 새로운 짐들을 받아 실었다. 나중에 들으니, 이 차는 버스일 뿐만 아니라 쿠팡의 택배 차량이어서 동네를 돌아다니거나 다른 도시나 마을로 가서 짐들을 배달한다.

 

드디어 아이자울 시내를 벗어 날 무렵, 갑자기 길가의 누군가가 우리 운전기사를 불렀다.

 

“이 봐 친구, 내 차가 고장 났어, 고쳐 주고 가”

 

우리 기사 아저씨는 지체 없이 차량과 승객들을 도로가에 버려 두고, 기꺼이 친구의 차 밑에 어깨 포복으로 들어갔다. 물론, 승객들에게 이렇다할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자기 할일만 묵묵히 했다.

 

30여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자부심에 가득 찬 어깨를 좌우로 흔들고 함박 웃음을 지으며, 우리에게 다가오며 한마디 던졌다. 

 

“Let’s go”


차가 아이자울을 완전히 벗어나자 그는 또, 갑자기 차를 세웠습니다.

 

“Let’s pray”

 

우리 양들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우리의 안전을 확실히 보장받은 다음 에야 차를 출발시켰다.

그는 우리의 목자였고 우리는 순한 양이었다.

 

아이자울에서 상아우까지 연결되는 길은 뱀처럼 꼬불꼬불 굽이쳤다.

버스는 외길로 달리다 잠시 한눈을 팔면 2차선이 이어지고, 졸다 눈뜨면 어느새 외길 위에 서 있었다.

지리산 노고단과 같은, 1,000미터 이상의 산들이 연이어 장엄하게 열병식을 하고 있다.

 

"한 끗 발을 헛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입니다!" 버스 한켠에서 귓가에 들려오는 외마디에, '우리 목자님이 왜 그토록 집요하게 예수님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으려고 했는지'를 조금이나만 알 것 같았다.

 

버스 여행 도중 두어 번의 식사와 많은 중간 휴식을 했다. 드녀, 12시간이 지난 저녁 6시에 미얀마 국경과 마주한 인도 상아우에 도착했다.

 

"멀리서 교회 종소리가 들립니다.

땡~ 땡~ 땡~

초등학교 시절,

대전 성남 감리교회에 다녔습니다.

피난민 판자촌의 불빛 없는 컴컴한 골목을 반드시 지나야 교회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 어두운 골목을 떨리는 마음으로 전력 질주 할 때 힘을 준 것은

 

바로 교회 종소리였습니다.

 

미얀마 시민들은 지금 민주주의를 위한 피의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민간인만 3천 명 이상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피 흘리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종소리가 되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왜 #미얀마저항군 을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질문에

 

어렴풋이

 

저 종소리가 답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정기후원은 

 

#전쟁난민집짓기 후원 - 신한은행 100-033-087780 (사)사람예술학교

#사람예술학교 정기후원 - http://support.saramschool.net

#HousingforWarRefugee #Socialprodu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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